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기타 /
2005-11-24 15:37:29
조회 : 12341
Name 무용평론가 송종건
Subject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Homepage http://dancecritic.com.ne.kr
<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
독일 후기 낭만파의 거장 바그너가 1848년부터 1874년까지 26년간에 걸쳐 완성시킨 오페라 - 바그너는 기존 오페라와 구분하여 음악극(Musikdrama)이라고 불리길 원했다고 하기도 한다 - <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가 현시대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지휘자이면서 오페라 연출가인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재해석으로 우리 나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지난 9월 24일부터 29일까지 있었다.
독일 , 러시아, 한국으로 이어지는 이번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 연주의 마린스키극장 오페라단 공연의 3국간의 삼각관계는 현재까지는 유효하다. 왜냐하면 이 마린스키 버전의 '니벨룽의 반지'는 2003년 독일에서 초연된 이후, 러시아 외의 해외공연은 이번 우리 나라 공연이 처음이라고 하기 때문이다(일본에는 2006년 1월 공연이 계획되어 있다고 한다).
주최측의 팜플렛 내용 중 일부를 보면, '한국공연사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공연이라고 되어있던 이번 공연은 오후 5시경에 시작하여 5시간 이상씩 4일 동안 이어지는 거대한 스케줄로 이루어져 오페라 애호 관객들의 일상이 흔들릴 정도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장르는 다르지만 공연예술(Performing Arts)의 평론을 하고 있는 평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평자는 4부작으로 이루어진 이번 공연의 1,2부와 4부를 보았다).
특히 무대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오브제를 설득력있게 변환시켜나가면서 시각적으로 약한 오페라의 공연예술로서의 약점을 완벽하게 보완해나가던 조지 티시핀의 무대 디자인과 장치는 - 팜플렛의 영문 소개판을 보면 조지 티시핀은 게르기예프와 함께 'production concept'를 이루어낸 것으로 나타나있다 - 경이로움 그대로였다.
진보랏빛 조명을 받은 거대한 피사체가 무대를 가득 채운 채 시작된 9월 24일의 '라인의 황금'(휴식시간 없이 2시간 40분 공연) 공연은 청아한 라인강의 처녀들의 성악 연주가 맑고 깨끗하게 이어진다. 상처받은 알베리히가 황금을 강탈하고 사라지고 처녀들은 놀라서 쓰러진다.
하늘에서 다시 거대한 와상이 천천히 무대 허공으로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동안 화려하고 강한 오케스트레이션 속의 연주들이 긴장감 있게 이어지고 있다. 조그만 난쟁이 모습의 니벨룽 종족들이 석공처럼 망치질하는 이미지도 실감나게 만들어지고 있다.
보탄에게 반지를 뺏긴 알베리히의 저주의 노래가 이어지고, 보랏빛 위주의 컬러풀한 원색의 조명을 세련되게 받고 있는 거대하면서도 담백한 무대장치가 계속 무대의 긴장감을 완벽히 이끌어 나간다.
땅과 존재하는 것의 여신인 에르다의 기품 있고 매혹적인 여자 저음이 관객들의 가슴을 메이게 하고, 젊음의 여신 프레야의 생명력 있는 생동감 넘치는 성악이 신비롭게 매혹적이기만 하다. 거대한 와상들에게 이제는 빛나는 황금빛 조명이 쏟아지고 있으며, 황금을 잃었는데도 계속 맑고 빛나기만 하는 라인강의 3처녀들의 합창이 꿈결처럼 무대에 번지고 있다.
인터미션 없이 2시간 30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공연시간이었는데도 금방 지나 가버린 느낌을 던지던 1부 '라인의 황금'공연은 무대 전체의 색상이 검은 보랏빛으로 변하며 끝나고 있었는데, 담백하다고 할 정도로 단순한 무대 장치의 변화가 마린스키오케스트라의 깊이 있고 장엄한 선율과 어울려 공연 내내 객석을 무게 있는 긴장감으로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저녁 6시부터 시작하여 두 번의 인터미션과 함께 5시간동안 공연된 9월 25일 공연 '발퀴레'는 막이 오르기 전부터 수 만개의 입자가 된 인위적이지만 자연스러운 기품이 넘쳐흐르는 입체적인 음향이 맑게 흐르다가 거대한 파열음이 되어 충돌되기도 하는 장엄한 진행을 이루고있다.
막이 오르고 추상표현주의의 거대한 토르소 오브제가 이제는 구부정하게 등을 기댄 체로 허공에 서있다. 이런 이미지 그 자체가 벌써 '공연'이 된다. 지그문트를 만난 지클린데의 맑은 샘물 같은 성악이 연주되고, 훈딩의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음악 연기가 일어난다(여자를 보는 척하면서, 슬쩍 남자를 쳐다보는 것도 대단히 위협적이다).
"오늘 처음 당신을 만났는데, 예전에 당신을 분명히 보았다" 등등의 문학성 높은 대사가 자막으로 계속 이어 지고, 프리카와 보탄의 부부싸움도 격렬하게 이루어지는데, 아무래도 난쟁이들의 움직임 등이 그런 대로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첫날보다는 움직임의 이미지들이 적어서 그런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터미션 후 이어진 제3막에서는 이제 거대 와상의 오브제가 허공에 말머리 형상의 거대한 볼륨으로 서있고 그 크고 넓은 등 뒤 쪽에는 불빛 조명이 어른거리고 있다. 이때 평자는 이런 추상표현주의 적이면서도 미니멀리즘 적인 오브제가 자신의 작품에 등장할 것이라고 100여 년 전의 바그너는 상상이라도 해보았을까하는 생각에 빠져든다.
8명의 발퀴레들의 애원에도 보탄은 사랑하는 딸 브륀힐데를 와상에 눕혀 잠에 빠져들게 하는 처벌을 하고, 무대 전체는 불꽃과 재의 형상의 붉고 검은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 있다. 머리에 불꽃을 이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조그맣게 움직이고 있는데도 무대 전체를 붉은 불꽃으로 선명하게 타오르게 만들면서 막이 내리는데, 마린스키 극장의 무용 안무능력의 승리일 것이다.
9월 29일에 본 '신들의 황혼' 공연은 오후 5시에 시작되어 휴식 두 번을 포함하여 5시간 30분 동안 공연되었는데, 거대 오브제는 이제 푸른 조명 속에서 머리가 없는 4개의 기둥이 되어 서있다. 무대 후방에 있던 검정 펭귄 형상이 검정 의상의 난쟁이들이 구슬 같은 통을 들고 다니며 8명의 현대무용수들이 신비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이들 모두 사라졌는데도(그리고 아직 성악 연주자들이 무대에 아무도 나오지 않았는데도), 무대 위의 거대한 오브제들이 무대를 살아서 꿈틀거리게 하고 있다. 이때 평자는 영국의 공연 미학자 폴 탐(Paul Tham)이 그의 저서 '관객을 위하여(For An Audience)'에서 한, "공연자가 없는 공연도 공연인가?"라는 무서운 미학적 질문을 떠올린다.
지그프리드와 브륀힐데의 환희와 축복의 2중창이 이루어진 다음(이때 무대장치는 검은 보랏빛 조명을 받으면서 허공으로 올라갔다), 일렁거리는 듯이 잔잔하게 회전하는 절묘한 조명이 무대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면서(이 작품은 결코 한번의 장면도 죽은 상태로 두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50여명의 대규모 합창단이 장쾌한 연주를 마치고 좌우로 사라지고 있다.
배반과 갈등과 진실 찾기의 복잡한 스토리의 진행 다음, 6명의 머리를 뒤로 길게 늘어뜨린 여인들이 진보랏빛 조명을 받고있는 플렛폼 위에서 신비스러운 인체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간다. 지그프리드 쓰러져 가고, 무용수들이 무대 뒤에 있던 배에 지그프리드를 싣고 천천히 걸어 나간다.
모든 것을 확인한 브륀힐데가 지그프리드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라인강에 브륀힐데가 반지를 던지고, 허공에 걸린 거대 오브제가 고개를 천천히 숙인다. 무대 위에는 푸른 회색의 색상이 물들어 가다가 다시 보랏빛 야광 조명이 비추이면서 황량한 푸름 속에 모든 것이 끝나고 있다.
공연 기간동안 뭔가 짓눌려있던 느낌을 주던 이번 공연을 다보고 나니 마치 어려운 수학 숙제를 다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런데 사실은 약 20일 후에 평론을 쓰고 있는 지금이 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다시 이번 공연의 팜플렛을 잠시 보면, 이번 공연의 지휘와 연출을 맡은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이번 공연에서 무대 디자인을 책임 진 조지 티시핀과 함께 바그너의 작품을 현대의 무대 위에 어떻게 올릴 것인가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There is no one answer as to how the Ring should be staged"라는 결론을 내리고, 주제는 고대에서 얻었으되 무대는 현대의 첨단기술로 실현한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사실 오페라가 현대화된다는 것은 결코 작곡가의 원곡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작곡가의 원곡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오페라의 현대화는 결국은 무대장치의 현대화, 무대연출의 현대화 등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영상과 이미지의 시대인 21세기를 맞은 오페라는 현대적 과학기술까지 도입된 최첨단 이미지예술이 되면서, 시각공연예술(visual performing art)로서의 변신을 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간다는 것이다.(송종건/무용평론가/dancecritic.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