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소련 벨라루스발레단의 세계적 안무가 발렌틴 엘리자리네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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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5 14:56:23
조회 : 11850
Name 무용평론가 송종건
Subject 구 소련 벨라루스발레단의 세계적 안무가 발렌틴 엘리자리네프 인터뷰
Homepage http://dancecritic.com.ne.kr
< 구 소련 벨라루스발레단의 세계적 안무가 발렌틴 엘리자리네프 인터뷰 >
일 시 : 2005년 12월 28일 오후 5시 30분
장 소 :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VIP룸
현재 우리나라 발레단(특히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고 있는 국립발레단)은 불행하다. ‘안무’를 하지 않는 - 정확히 말하면 안무능력이 없는 - 사람들이 단장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국립발레단 단장 직은 예술적 창조능력과는 관계없이 아무나 해도 되는 자리인 것처럼 인식되어 오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선 담당 관료들에게 어떤 연줄을 잡아서 어떤 로비를 펼쳐야 하는가 하는데 더 관심이 쏠려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제 우리나라 국립발레단 단장은 ‘행정’이나 ‘관리’만 하면 예술창작 능력과 관계없이 아무나 해도 되게 되어 버렸다.
이 말은 이제 우리나라 국립발레단 단장은 퇴직 관료들(하수도과 출신도 괜찮고 상수도과 출신도 괜찮다)이 해도 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모든 작품들은 외국에 로열티만 주고 사오면 되고, 공연 연습까지도 외국안무가들이 시키고 가기 때문이다.
반면에 안무능력을 가지고 있는 발레단은 행복하다. 우선 이들은 외국안무가들에게 국민의 혈세를 로열티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외국의 작품을 노예처럼 카피만 하고 있지 않아도 되고, 언제라도 자신 고유의 발레를 창작하거나 기존 클래식발레를 재안무 하여 무대에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면에서 평자는 지난 12월 말 우리나라를 방문한 구소련 3대 발레단의 하나인 벨라루스국립발레단의 세계적인 안무가 발렌틴 엘리자리네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벨라루스국립발레단의 너트크래카 공연은 서울올림픽공원 올림픽 홀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열악한 무대 시설과 공연장 시설은 평자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하고 있었다. 특히 평자가 그 날 공연을 보러 온 우리나라 무용인에게 공연을 본 소감을 물어 보자,
“너무 훌륭하고 아름다운 움직임과 자태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무대 시설에서 공연을 하게 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미안해진다. 무대가 좁아 무용수들이 주떼도 마음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훌륭한 무용단을 이런 시설에서 뛰게 해서는 안 될것 같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서로 바쁜 스케줄 때문에 낮 공연과 밤 공연 사이 약 2시간동안을 인터뷰 하기로 어제 미리 약속해 둔 엘리자리네프 - 그의 눈빛은 언제나 불꽃이 타는 듯 형형하기만 하다 - 에게 첫 번째 질문을 던진다.
-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러시아 발레단 중에서 키로프발레단이나 볼쇼이발레단은 잘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그 이외의 발레단들은 혼란스럽습니다. 비록 소련이 붕괴되고 벨라루스 등 국가들이 독립했지만, 저의 생각으로는 아직 러시아 발레를 이야기할 때는 옛날의 지정학적인 지도로 이야기해야 된다고 봅니다. 러시아발레에서 벨라루스발레단의 위상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벨라루스발레단은 키로프발레단, 볼쇼이발레단 등과 함께 구 러시아의 3대발레단 중의 하나였습니다. 현재도 약 25개의 레퍼토리를 가지고 100여명의 단원들이 열심히 공연하고 있습니다”.
-노보시비르스크발레단은 어떻습니까?
“저희들보다 늦게 만들어진 발레단이지만, 러시아 중부에 있는 노보시비르스크발레단도 뛰어난 발레단 중의 하나입니다”
- 모던 발레도 공연합니까?
“물론입니다. 저희 발레단에서는 클래식발레, 민속발레, 모던발레 등 3가지 장르 모두를 레퍼토리로 가지고 공연하고 있습니다. 근래 세계 발레의 추세도 그렇지만, 올바른 발레단이라면 이 3개를 모두 한꺼번에 추구해야 합니다”
- 저는 지리 킬리언이나 모리스 베자르 등의 모던발레를 흥미 있게 보았는데, 모던발레도 직접 창작하시는지요?
“발레단 단장으로서 당연히 저의 창작 모던발레가 저희 발레단의 레퍼토리로서 공연되게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지리 킬리언의 안무 방식은 저의 의견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 ‘모던’이라기보다, ‘클래식’에 가까운 모던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때 평자는 지리 킬리언의 창작발레도 ‘클래식’이라고 간주하려고 하는 엘리자리네프의 ‘모던발레’ 창작품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단장님의 그런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네, 사실 이번 한국 투어공연은 무대시설이 너무 열악합니다. 직접 우리나라에 오셔서 보았으면 합니다. 직접 오셔서 보셔야 합니다(이때 엘리자리네프의 표정은 정말 열악한 무대 세트나 조명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상한 예술가의 모습 그대로였고, 평자는 표현은 못했지만 정말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현재 러시아발레는 잘 발전하고 있습니까?
“러시아발레의 현재 문제점들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키로프발레단 같은 경우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갈 지도자가 없어 적지 않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때 평자는 갑자기 지난 9월 서울에서 있었던 키로프오페라의 ‘니벨룽의 반지’가 떠올랐고, 그 무대의 웅장함이 생각났다) 지난 9월에 온 키로프극장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는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갔습니다.
“오페라 쪽에는 뛰어난 분(게르기예프를 말하고 있는것 같다)이 있으나, 발레 쪽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벨라루스 라는 나라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인구는 약 1000만 명 정도 되고, 수도는 민스크입니다. 민스크에는 약 20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영토는 넓으나 인구가 적은 곳이지요. 그리고 경제는 근래 성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 아까 발레단의 레퍼토리가 25개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습니까?
“‘Swan Lake', 'Giselle', 'Nutcracker', 'Sleeping Beauty', '라 바야데어’, ‘해적’, ‘라 실피드’, ‘고집쟁이 딸’, ‘스파르타쿠스’, ‘로미오와 줄리엣’, ‘카르미나 부라나’ 등 입니다(‘카르미나 부라나’라는 작품부터 주로 자신의 창작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서로 발음 확인이 어려워지니까, 직접 종이에 ‘Karmen Suite', 'Bolero' 등의 작품 제목을 적어준다)”
- (이때 평자는 엘리자리네프가 안무한 ‘카르미나 부라나’, ‘볼레로’ 등의 작품을 보고 싶다고 느끼며, 시간이 없는 관계로 준비해 온 질문을 여러 개 뛰어 넘기고 다음 질문을 한다) 한해 공연은 몇 회 정도 합니까?
“보통 10여개 이상의 레퍼토리를 가동하면서, 한해 120여 회 정도의 공연을 합니다”
- 한국말고도 세계 공연을 많이 다니는지요?
“모스크바, 파리, 뉴욕....(끝이 없을 것 같아, 시간을 아끼기 위해 평자가 빨리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 발레 너트크래카의 원전에는 호두까기인형 목이 부러지는데, 당신의 버전에서도 목이 부러지지 않은데, 그러면 어린이 관객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겠습니까?(사실 이 질문은 유리 그리가로비치에게 하고 싶은 것인데 엘리자리네프에게 먼저 하게 되었다)
“관객이 어린이들 위주라면 나는 다시 안무해서 원전에 가깝게 만들어 공연을 할 것입니다. 저는 경우에 따라 안무를 언제나 바꿀 수 있습니다”
- (여기서 다시 평자는 약간 짓궂은 질문을 하기로 했다) 지금 우리나라 국립발레단 버전이 유리 버전이라서 그런 식으로 진행됩니다. 호두까기인형을 살아있는 조그만 사람으로 공연시킨 것은 유리가 먼저입니까, 단장님이 먼저입니까?
“(이 때 엘리자리네프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평자는 다시 한번 정확히 이 질문을 반복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유리가 먼저 시도한 것입니다”
- (사실 작년 2004년 방한 때 엘리자리네프는 평자에게 자신의 ‘스파르타쿠스’ - 엄청난 작품이었다 - 가 유리의 ‘스파르타쿠스’ 보다 빨리 제작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너트크래카’의 일부는 자신이 유리 버전으로부터 인용해왔다는 것을 잠시 주저했지만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발레단들의 무용 능력은 어떻습니까?
“저희발레단 무용수들도 거의 완벽한 기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키로프나 볼쇼이단원들의 기량도 뛰어납니다”
- 벨라루스 지역에서 우수한 발레무용수가 많이 배출됩니까?
“발레스쿨에서 철저한 교육을 받아 세계의 유수 발레단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현재 키로프발레단의 주역인 알렉스 쿠코프(Alex Kurkov), 이고르 콜브(Igor Kolb) 등이 민스크 출신입니다”(사실은 이 질문이 시작되기 전부터 어느 틈에 인터뷰 시간이 2시간이 지나가버려 다음 공연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고, 계속 밖에서는 ‘단장님’을 찾고 있었다. 따라서 엘리자리네프와 평자는 밖의 눈치를 살펴가며 인터뷰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평자는 또 준비해 온 질문을 몇 개 뛰어넘기고, 우리 젊은 무용인들에게 꼭 전달해주고 싶은 질문 한 개를 마지막으로 던진다) 당신의 안무는 대단히 표현력과 설득력이 있는데, 안무는 어떤 방식으로 하십니까?
“특별한 것은 없고 끊임없이 창작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그 생활을 33년 동안 해오니 이제 뭔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뭔가 미진한 것 같아 평자가 다시 한번 - 시간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가 있다 - 정중하게 물었다) 우리 젊은 무용인들에게 좋은 발레안무가가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지 정말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우선 ‘영감’을 일으킬 수 있는 수 많은 학문적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음악도 많이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상력도 키워야 합니다. 사실 저는 저의 안무의 많은 부분을 밤에 자는 동안 꿈속에서 봅니다. 그 꿈속에서 본 안무 구도와 움직임의 구도를 아침에 일어나서 재빨리 정리해 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가 꿈속에서 안무를 한다는 것은, 그가 평소 때 그 만큼 집요하게 작품을 생각하고 구상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다음 공연 준비 때문에 무대 뒤로 서둘러 떠나고 있는 엘리자리네프를 배웅하며 평자는 우리나라에도 빨리 훌륭한 안무가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고 있었다.(송종건/무용평론가/dancecritic.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