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 카르멘 & 심포니 인 C
기타 /
2006-12-05 15:14:21
조회 : 10960
Name 무용평론가 송종건
Subject 국립발레단 - 카르멘 & 심포니 인 C
Homepage http://dancecritic.com.ne.kr
< 국립발레단 - 카르멘 & 심포니 인 C >
현 시대 무대예술로서의 무용공연의 목표는 안무가의 사상이나 철학을, 무용수 신체의 이지적이고 지성적인 표현으로, 객석의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이미지들이 얼마나 무궁무진한 표현을 객석에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무대 위에서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던 국립발레단의 < 카르멘 & 심포니 인 C > 공연이 지난 10월 24일부터 28일 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있었다(평자는 27일 공연을 보았다).
미국이 현 시대 클래식발레의 강국이 되게 만든 러시아 출신의 위대한 안무가 조지 발란신의 숨결이 무대 위에서 살아 넘치던 첫 번째 작품 < 심포니 인 C >는, 국립발레단 단원들이 ‘새로운 세대’로 구성되어 이루어지는 모습이었는데, 풋풋한 느낌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국립발레단이 호암아트홀 등에서 같은 작품을 이루면서 만들어 내던 찬란한 느낌 같은 것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쨌든 다시 보는 작품이라서 그런지, 이어진 두 번째 작품 < 카르멘 > 보다는 신선함이 떨어졌다.
국립발레단 단원들의 모던발레에 대한 잠재적 기량을 완벽하게 확인시켜 주던 두 번째 작품 마츠 예크 안무의 < 카르멘 >은 국립발레단 단원들도 창의력 있는 좋은 ‘안무’만 있으면 어떠한 표현과 느낌이라도 완벽히 소화시켜 낼 수 잇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날 공연의 주역 노보연(카르멘), 장운규(돈 호세), 이영철(에스카밀리오), 등의 움직임의 연기는 탁월했다. 장운규와 노보연의 2인무는 무게 있는 감성이 살아 있었고, 에로틱한 장면의 연기도 상징적이고 끈적끈적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이루어졌다. 에스카밀리오 역의 이영철의 캐릭터도 뚜렷하기만 했다.
특히 작품 후반에서 분노에 찬 장운규가 표현력 넘치는 움직임의 연기를 무대 전방에서 이룰 때, 이영철과 여자 군무들이 완전히 다른 안무포맷의 움직임과 이미지를 병렬시키고 있었는데, 바로 이때 무대 위에는 감동의 전율이 흐르고 있었으며, 마츠 예크 안무의 ‘천재성’에 무서움 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국립발레단은 앞으로 계속해서 이런 좋은 작품을 레퍼토리로 늘려 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계속 아쉬운 점은 남는다. 이번 공연에서도 우리 스스로의 ‘창작’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국립발레단의 < 제117회 정기공연 >도 결국은 ‘창작’이라는 면에서는 ‘국립발레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 국립발레단의 공연이 있던 지난 10월 한 달 동안 평자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국립오페라단’의 한국창작오페라 < 천생연분 >을 예술의 전당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국립발레단’ 보다는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방의 ‘광주시립무용단’이 서울에 까지 와서 한국창작발레 < 서동요 >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것을 국립극장에서 직접 보았다.
국립오페라단의 한국창작오페라 ‘천생연분’은 우리나라 창작 작품이지만 독일에서 초연을 이룬 다음 서울에서 공연한다고 했는데, 일부 완성도는 떨어지고 있었지만, 우리나라 고유의 오페라 정체성(identity)을 진지하게 찾아나가는 모습이 부럽기만 했다.
그리고 광주시립무용단(명칭은 무용단이지만, 현재 우리나라 유일한 지방도시의 ‘발레단’이다)의 < 서동요 >도 우리 고유의 소재를 통해, 단장이 직접 안무하여 우리 고유의 창작발레를 끝까지 지키고 추구해 나가는 모습이 진지하기만 했고, 우리 창작발레의 전통이 서울이 아닌 지방인 ‘광주’에서 이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사실 한 해 국가의 수십억 원에 달하는 피 같은 혈세를 사용하는 ‘국립’이라는 발레단체의 존재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창작의 맥을 이어나가는 것이 된다. 이것은 우리나라 ‘국립’뿐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의 ‘국가의 지원을 받는 발레단’의 숙명적인 목표가 된다(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는 발레단이라면 단지 ‘예술적’비판만 받으면 끝나지만, ‘국립’의 타이틀을 걸고 국민의 혈세를 쓰고 있는 경우는 차원이 달라진다).
그런데 지난 약 10여 년 동안 국립발레단은 제대로 된 창작 작품을 무대에 올린 적이 없다. 특히 현재 단장인 박인자가 취임한 이후로는 아예 창작발레를 스스로 창작하여 정기공연 등에 올린 적이 없다. ‘국립’발레단이 스스로의 ‘창작’은 아예 안하는 것처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공연의 팸플릿에 나타난 현재 단장 박인자의 마지막 임기 해인 2007년 상반기 국립발레단의 스케줄을 보면, 1월에 갈라공연(이것은 일종의 ‘기획’공연이 된다), 4월에 노보시비르스크발레단과 합동동연, 5월 에 유럽공연이 있다고 되어 있다. 즉 한 해의 절반 동안 단 한 차례 닷새 동안만 서울에서 공연을 하겠다고(그것도 러시아발레단과 ‘합동’으로) 되어있다.
현재 서구의 유수 극장에 소속된 유수 발레단은, 1년에 약 15~20개의 레퍼토리로, 그리고 스스로의 창작발레 창조에 심혈을 기울여가면서, 1년에 약 200여회에 가까운 공연을 자신이 속한 극장 등에 올린다. 그런데 국립발레단은 2007년 상반기 6개월 동안, 유럽 공연만 빼면, 단 1개의 레퍼토리로 5일 동안만 공연하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무용계에는 잘못된 무용단체장 인선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 국공립무용단들의 창작에 무능하고 레퍼토리 개발에 욕심이 없는 단체장들이, 세계적 기량을 갖춘 프로무용수들을 ‘철밥통’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면에서 볼 때는, 현재 국립발레단 운영은 총체적 부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송종건/무용평론가/dancecritic.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