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정명훈, 피아노/김선욱)
기타 /
2007-05-05 08: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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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정명훈은 그의 어머니 이원숙 여사에게 음악재단을 빨리 만들어 관악기를 전공하는 학생들을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현악과 피아노는 세계적 수준의 연주자가 배출되는데 비해 관악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관악파트는 좋은 연주자가 없어 외국인들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제 그가 직접 팔을 걷고 나섰다. 우선 세계적 클라니넷 주자인 폴 메이어를 영입했고, 시향에 목관 아카데미를 만들어 관악을 전공하는 학생을 뽑아서 관악주자를 양성할 계획이다. 서울시향의 대부분 단원을 물갈이 하며 원성도 많이 샀지만, 그 한사람의 노력에 의해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조금 씩 좋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정명훈이 그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를 이끌고 성남아트센터를 찾았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은 프랑스 국립 라디오 방송공사 필하모닉을 1976년에 재창단하여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하는 프랑스의 대표적 연주단체이다. 정명훈은 2000년부터 이 연주단체의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로 취임하여 활동하고 있는데 이번 아시아 순회공연의 일환으로 한국에 들린 것이다. 이들이 연주할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4번과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다.
직장인들을 배려해서인가? 어린이날 연휴전인 금요일이라 그런가? 공연시간을 보통 때보다 30분 늦춘 8시로 정해서 그런지 좀 여유가 있다. 저녁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공연장을 향하는데 이들의 인기를 말해주듯 많은 사람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정명훈을 보기 위해서일까? 라디오 프랑스의 연주를 듣기 위해서일까? 아마 모두 해당되겠지. 30분전인데도 로비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지인들과 수인사를 나누는 중 우예주 양이 ‘선생님’ 하며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나를 반긴다. 우예주 양은 3년 전 그녀가 16살일 때 카네기홀에서 파가니니의 무반주 카프리치오 24곡 전곡을 연주하여 갈채를 받은 우리나라가 낳은 또 하나의 신동이다. 이 곡은 어렵기로 소문난 곡인데 우리나라 사람이 전곡을 연주한 것은 우예주 양이 처음이라 한다. 그녀는 지금 맨하튼 음대에 재학 중이다. ‘아니, 너 언제 왔니?’ 하니 오늘 미국에서 도착했다 한다. 아직 시차 때문에 피로할 텐데 공연장을 찾아 온 것이다. 좋은 프로그램이니 어머니가 예약을 해 놓은 모양이다.
드디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먼저 연주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4번은 베토벤이 작곡한 5개의 피아노 협주곡 중 5번과 함께 그의 원숙미를 잘 나타낸 작품이다. 최근 리츠 콩쿨에서 1등으로 입상한 김선욱 군이 협연자이다. 김선욱 군은 김대진을 사사한 순수 국내파로 유학을 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세계적인 교향악단과 연주를 한다는 것이 혹시 부담을 주지 않을 까 염려도 되었지만 그건 기우였다. 리허설도 충분히 하지 못했을 텐데 아주 오래된 지기처럼 자연스럽게 연주를 했다. 아마 정명훈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그에게 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연주가 끝나자 쏟아지는 박수 소리에 몇 번이나 나와서 답례를 한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도 좋았고 선욱이도 잘 했다. 정명훈도 21살 때 챠이코프스키 콩쿨에서 2위로 입상하였지만 19살 김선욱의 성공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인터미션 시간에 로비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연주 잘했다고 칭찬이다.
인터미션 시간을 마치고 두 번째 연주곡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 시작되었다. 이 곡은 베를리오즈가 실연 후 자기의 감정을 담아 작곡한 곡으로 후기 낭만파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작품이다. ‘어느 예술가의 생애’ 란 부제처럼 예술가가 꿈을 꾸며 환상 속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묘사했다. 정명훈은 이미 여러 차례의 연주를 통하여 곡을 완벽히 해석한 것인지 암보로 지휘를 했다. 단원들 역시 곡을 잘 알고 있겠지만 정명훈의 손짓에 따라 정확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연주회에 오기 전 집에서 런던심포니의 LP로 이 곡을 감상을 하고 왔는데 라디오 프랑스의 연주가 더 듣기가 좋았다. 현장에서 듣는 감동이 더 해져서 그럴 테지.
다만. 뒤에 서 있는 팀파니 주자 둘이 연주 중 불필요한 동작을 하는 것 같아 눈에 거슬렸다. 혹시 지휘를 하는 정명훈이 분심이 생기지나 않을 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연주, 역시 최상이었다. 잉글리시 혼과 서로 주고니 받고니 하며 환상 교향곡의 특징을 잘 살려 주었다. 퍼커션연주자들의 소리도 좋았는데 특히 심벌즈 소리가 지금도 귀에 남아 있는 듯 하다. 마지막 5악장을 마칠 때까지 관중들의 감상태도도 훌륭했다. 정상의 연주단체와, 좋은 공간, 관중들의 매너, 3박자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음악회이다. 연주가 끝나니 시간이 10시다. 다소 늦은 시간이지만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았다. 시민들에게 좋은 음악회를 준비한 성남아트센터 스탭 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