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우리나라 무용공연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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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31 10:14:37
조회 : 12170
Name 무용평론가 송종건
Subject 2006년 우리나라 무용공연 현황
Homepage http://dancecritic.com.ne.kr
< 2006년 우리나라 무용공연 현황 >
거의 날마다 무용공연장을 찾고 있는 평자는 무용 공연을 보러갈 때마다 좋은 공연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도하는 마음을 가진다. 공연의 질이 높아야 무용이 관객의 사랑을 더 받게 될 것이며, 평론가로서도 가능하면 공연이 좋았다는 평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평자도 사람인 이상, 가능하면 좋은 공연을 보고 긍정적인 평론을 써서, ‘좋은’ 공연을 창조한 예술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2006년 6월 14일자 A35면의 ‘빨간 불 켜진 충무로’ 라는 제목의 영화평론가 심영섭의 글을 보면 “(현재 우리 영화 관객들도) ‘신파와 코미디’라는 전통적인 한국적 정서를 답습하는 영화와 연기변신 없는 스타 시스템 보다 재치 있고 파격적인, 기존의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뭔가 다른 색깔’의 한국 영화에 분명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영화는 ‘말아톤’과 ‘레이맨’을 섞은 것 같은 ‘기봉이’ ‘대출이’ ‘필두’ 가 난무하는 멜로와 코미디를 연속해서 내놓는다. 한마디로 196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 이후 모처럼 만에 연간 제작 편수 100편을 넘긴 충무로가 너무 쉽게. 너무 한국 관객들을 만만히 보는 그저 그런 기획 영화를 쏟아놓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라고 하고 있다.
우리 무용 공연의 현황은 어떤가? 무용 공연의 목적은 순수예술로서 무용을 감상하기 위해 객석에 온 관객들에게 무용의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무용공연들은 진정한 순수 관객들에게 뭔가 새로운 감동을 던지려는 진지한 노력이 실종된 모습을 보인다. 대부분의 공연들이 가족이나 친지. 혹은 학생들과 그 가족들을 강제 동원한 학예회나 잔치 분위기로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사이비기획사라는 곳을 통해 일당을 주고 동원하는 관객들 까지 만들고 있다. 그러면서 사이비평론가나 사이비기자들을 돈으로 매수해서 엉터리 ‘평론’을 받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들은 무용 공연 자체도 하나의 예술 활동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권’이나 ‘비즈니스’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공연의 또 다른 ‘목적’ 중 하나는 이런 작업을 통해 자신들의 ‘실적’(도대체 이런 쓰레기 실적이 왜 필요한가?)을 쌓고 인맥을 관리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배 째라’는 식의 공연은 순수무용 예술관객들을 예술적으로 수용하지 못할뿐더러 우리 무용의 사회적 인식마저 극도로 악화시킨다.
그런데 더 더욱 큰 문제는 바로 이런 인간들이 한해 수백 억 원이 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문화관광부, 등의 피 같은 국민의 혈세를 무식하고 무책임하고 부패된 관료들과 함께 난도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열심히 자신의 예술작업을 하고 있는 순수예술가 들을 비웃고, 우리 무용의 올바른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순수예술가로서 프로정신이 완전히 실종된 결코 공연을 하지 않아야 할 것들이 국가의 지원금을 독식하고 엉터리 공연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이들은 자신들의 엉터리 공연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올바른 평론을 받기 싫어하며 자기 식구들이나 사이비 평론가나 사이비기자 부패관료 들만 모아 놓고 공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지방 공연장만 숨어서 돌아다니는 것들도 있다.
이들의 하나같은 공통점은 객관적이며 정확한 평론을 무서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원된 박수부대나 사이비평론가등을 빼고는 객석을 텅 비워 놓고도 올바른 평론을 받지 않기 위해서 온갖 저질스러운 행위를 다한다. 물론 이런 행위 중에 ‘범법행위’가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무용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순수 무용인 모두가 힘을 합쳐 이들을 무용계와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키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강구해야 한다.
2006년 무용시즌은 1월 4일과 5일 이틀 동안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있었던 ‘클래식발레 스페셜 갈라‘ 공연으로 화려한 오픈을 했는데. 이원국 김지선 커플의 < 스파르타쿠스 2막중 아다지오 > 가 매혹적이기만 했다. 키로프발레단의 유지연과 이코르 콜브의 < 로미오와 줄리엣 중 발코니 파드되 >도 상큼하게 이루어졌으며, 볼쇼이발레단 배주윤의 < 에스메랄다 >도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강수진의 < 카멜리아 레이디 3막 중 블랙 파드되 > 도 스토리발레의 정수를 느끼게 하며, 온몸으로 표현되는 발레의 표현력을 확인시켰다. 1월 14일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있었던 김윤정 안무의 < 닿을 내리며 >는 작품의 투명한 메시지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창의적 아이디어 없이 싸구려 연극 연출의 모습을 보이던 이 작품은 ‘게으른’ 안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
MCT라는 공연 기획사라는 데서 ‘주관’한다는 이경옥 무용단의 <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시소게임 > 이 같은 장소에서 12일 있었는데 저질스러운 막춤을 흔들고 있었다. 이런 공연(?)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가 국민의 혈세로 수천만 원씩 지원했는데, 지원금을 국고로 회수해야 하고 지원담당자를 문책해야 한다.
8일부터 10일 까지 국민대학교 예술관 대극장에서 있었던 ‘제11회 바뇰레 국제서울안무대회’ 에는 11명의 젊은 안무가들이 참여했는데 세계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모두 더 열심히 노력해야 될 것 같았다. 1월 30일 국립극장에서 본 뮤지컬 ‘프로듀서’는 저질대사가 난무하는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뮤지컬이었다.
2006년 2월 17일에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설무리 무용단’의 두 중견안무가 이미희. 이정화의 한국창작춤 공연이 진지하게 이루어졌는데 아직도 좀 더 투명한 의미 전달이 필요하다. 11일에 국립국악원 예악당 에서 있었던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 봉황이여 오라 > 도 현 시대 무대예술로서의 전통무용이 가야 할 길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었는데, 그 예술적 에너지는 더욱 강화해야 한다.
17일과 18일 창동 서울열린극장에서 있었던 육완순무용단의 < 슈퍼스타 그리스도 2006 >은 음악이 너무 진하고 강하게 흘러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함몰당하고 있는 모습이다. 10일부터 12일 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있었던 얀파브르의 < 눈물의 역사 >는 출연자가 무대위에서 오줌을 누는 장면을 보이기도 했는데. 작품의 내용이 없어 혐오스럽기 만한 저질공연이 되고 있었다.
21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있었던 ‘일본 코바츠바라무용단’의 < 플라멩코 - 카르멘 >은 스페인 민속춤에 지성적 표현을 담아내는 우수한 공연이었다. 23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본 국립오페라단의 < 투란도트 > 오페라 공연에서는 국수호무용단(안무 : 이경수) 단원들이 뛰어난 안무와 움직임으로 오페라 완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2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본 프랑스 뮤지컬 < 노틀담 드 파리 >는 현대무용, 발레, 비보이 무용 움직임 등을 마음껏 선보이고 있었다. 조화롭고 입체적인 안무가 작품의 최전방에 나서 작품 흐름을 주도하고 있던 이 성공한 뮤지컬은 뮤지컬 제작에서 ‘무용 안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무대 위에서 완벽히 보여 주고 있었다.
2월 10일부터 3일 동안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본 ‘제8회 비보이 유닛 한국예선’ 에서는 비보이 무용인들의 현란한 테크닉을 볼 수 있었는데, 이들에게 빨리 우리 무용예술의 미학적 의미를 교육하여 우리 순수 무용으로 끌어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22일에 본 김영희무트댄스의 ‘워크샵 퍼프먼스’는 스스로가 공연 타이틀에서 말하고 있듯이, 말 그대로 괴기하고 음침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다. 이런 의미가 통하지 않는 국적 불명의 움직임을 결코 한국창작 춤으로 간주 할 수 없을 것이다.
3월 6일부터 8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있었던 ‘춤작가 12인전’은 어느 정도 나이 먹은 안무가들의 작품들이었는데, 공연내용이나 공연자 모두가 모든 것이 지치고 피곤한 모습들이었다. 같은 장소에서 10일 날 본 ‘세계음악과 만나는 우리 춤 - 멕시코 음악’ 은 가족 찬치 처럼 끼리끼리 모여 돛대기 시장 분위기로 이루어지고 있던 창의력 없는 공연이었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3월 5일에 보았던 ‘창작발레 안무가’공연 에서는 지우영의 < 지젤이 지그프리드를 만났을 때 >등의 창작발레가 작품에 문맥을 담고 있었다. 국립국악원 예악당 에서 3월 3일에 본 ‘2006 김문애의 춤’공연에서 김문애는 우리 전통무용의 아름다움을 투명하게 빛내고 있었다.
3월 11일 고양 어울림 극장에서 본 뮤지컬 < 웨스트사이드스토리 >는 과다한 서사와 답답한 안무가 객석을 힘들게 했다. 29일에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본 국수호. 정재만의 전통무용공연은 무게 있었다. 하지만 같은 날 출연한 김매자와 배정혜의 전통 춤은 예술성이 사라진 뻣뻣하기만 한 움직임을 보였다.
클래식발레의 정수를 보여주던 유니버설발레단의 < 잠자는 숲 속의 미녀 > 공연이 4월 5일부터 9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깊은 감동을 받은 관객들의 큰 박수 속에 이루어졌으며, 14일 교육문화회관에서 본 이원국발레단의 < 트라이앵글 > 공연도 뛰어난 기량의 무용수들이 상큼한 이미지를 깨끗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8일 안산문화예술회관에서 본 러시아 크래믈린발레단의 <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도 객석에 투명하고도 선명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4월 15일 여의도 KBS홀에서 있었던 조기숙 발레 < 꼼뽀지숑 >은 적당한 음악에 적당히 몸을 흔들어 주고 있어 건질 것이 없었다. 21일 토월극장에서 있었던 장선희발레단의 ‘발레가 시를 만났을 때’도 치졸한 공연진행으로 무용예술의 순수성을 스스로 짓밟고 있는 느낌 이었다
4월 7일 토월극장에서 있었던 유미나 안무의 LDP무용단 정기공연도 작품의 의미를 살려내지 못하고 있었다. 6일에는 김백봉 선생님의 팔순 축하연 형식의 공연이 수많은 제자들의 공들인 움직임 속에서 리츠칼튼호텔 그랜드볼룸 에서 깔끔하게 이루어졌다.
5월에 들어서 의미 있는 공연은 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본 서울시무용단의 창작무용 < 심청 >(안무 : 김백봉)이었는데, 한국 창작춤 대작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아직 몇 가지 과제는 남기고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17일에 본 ‘동아무용콩쿨’은 출연자들의 진지한 경연이 있었는데, 심사위원을 하는 기성 무용인들과 주최 측 모두가 공정한 심사에 배전의 노력을 해야 한다.
17일 국립박물관 용 극장 에서 본 ‘봄날 우리 춤 속으로’라는 공연에서는 역시 얼치기 해설가가 나타나 무용공연의 분위기를 깨고 있었다. 그리고 강미선, 황희연 등 출연자들이 예술성 없는 움직임을 유희처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깊은 예술성을 갖춘 박숙자의 전통무용 공연은 매혹적이기만 했다.
17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있었던 이용인의 공연에서는 이용인의 독무는 표현력 있었지만, 군무와 2인무의 안무는 좀 더 정교했어야 한다. 같은 장소에서 11일에 있었던 탐 무용단의 공연도 능력 있는 무용수들을 안무가 되지 않아 체조 선수처럼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역시 같은 장소에서 15일에 있었던 크누아무용단 정기공연에서는 답답한 안무의 모습을 보여 우리 무용 교육에서 창작교육의 부재의 모습을 또다시 절감하게 했다. 25일과 28일 4일 동안에는 포이동 M극장의 개관기념 공연이 8명의 중견 안무가들의 공연으로 이루어 졌는데, 앞으로 M극장이 무용인들의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예감을 들게 했다
5월 24일부터 6월 6일까지는 ‘제25회 국제현대무용제’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등에서 있었는데, 국내 작품들은 거의 모두 실망스러웠고, 국외 작품 중에서는 영국 캔두코무용단 등의 공연이 인상적이었다.
6월에 들어 중요한 공연은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있었던 국수호 안무의 < 고구려 > 였다. 이 작품에서는 깊고 넓은 문맥이 장치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무용예술을 통해 고구려 문화와 역사를 복원한다는 심오한 목적은 충분히 살아있었다.
독일월드컵 조 예선 첫날 한국과 토고전이 이루어지던 날에 있었던, ‘송화영, 양성옥’ 이 함께 한 < 화초별감무곡 > 공연은 송화영 고유의 독특한 춤사위가 강렬하게 장치된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양성옥의 < 산조 >공연도 우리 전통무용의 정체성을 가장 지적이며 단아하고 강렬하게 표현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공연 후 송화영은 작고했다.
평자와 그렇게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남자 무용수로서, 짧은 만남동안 순수무용인으로서의 자긍심을 힘 있는 목소리로 들려주었는데, 명복을 빈다. 14일 토월극장에서 본 김영희의 < 마음을 멈추고 > 공연은 한국무용의 전통에 뿌리를 두지 못하는 한국 창작 춤 이라는 것이 얼마나 초라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정확히 보이고 있었다.
29일 광진문화예술회관 에서 본 정용진 안무의 < 6월의 기억 >은 젊은 안무가의 창작에 대한 열의가 나타나고 있었으며, 6월 3일에 대전문화 예술의 전당 아트홀에서 본 대전시립무용단 한상근 단장 안무의 < 북위 37도, 동경 127도 >는 우리 무용이 표현하지 못할 주제는 전혀 없겠구나 하는 확신을 주며, 선명하고도 표현력 있게 이루어졌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15일에 있었던 발레블랑의 정기발표회에서 김향좌와 안윤희도 창의력 높은 창작발레를 선보였다. 6월 2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있었던 프랑스 몽딸보 에르비유 댄스 컴퍼니의 < On Dance >는 감동 없는 움직임을 무의미 하게 나열하고 있었으며, 6월 28일과 7월 1일 안산문화예술회관에서 본 캐나다 마리쉬 나르 컴퍼니의 공연들도 안무능력 부족으로 거친 막춤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7월에 들어서는 오랜만에 작품에 창의성이 담긴 공연을 만날 수 있었는데 7월 8일 토월극장에서 있었던 아지드현대무용단의 < 씻김 2006 >공연이었다. 무대예술로서의 무용의 의미를 알고 만든 작품인 이 공연은 객석의 따뜻한 박수를 받고 있었다. 같은 극장에서 7월 2일과 3일 이틀 동안 채상묵의 창작 춤 공연이 있었으며, 역시 같은 극장에서 7월 29일 황미숙의 < 숭어의 하늘 > 공연이 있었는데, 두 공연 모두 정확한 메시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아르코 예술 극장 대극장의 기획공연이라고 하던 포즈댄스시어터의 공연도 7월 25일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있었는데, 너무 자신 무용단 홍보에 치우치는 것 같아, 공연이라는 느낌에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 8월 22일부터 29일 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등에서 제 3회 서울국제 무용콩쿠르가 있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출연자나 작품의 질이 왜소화되는 느낌이 있었다.
8월 3일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에서는 김은이의 < 꿈꾸는 허아비 >공연이 있었는데, 한국 창작 춤으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좀 더 투명한 안무에도 신경을 썼으며 한다. 8월 1일 에는 서교동 비보이 극장에서 <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공연을 보았는데 아직 ‘무대 예술’로서의 완성도는 적지 않게 떨어지고 있었다. 비보이라는 무용공연을 무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용 ‘안무’가 필요한데, 연극 ‘연출’을 하고 있었다.
8월 8일에는 미국 뉴욕에서 강선영의 전통춤 공연을 보았다. 20세기의 위대한 안무가 조지 발란신이 창립한 뉴욕시티발레단이 상주하고 있는 뉴욕 링컨센터내의 뉴욕스테이트시어터에서 있었던 이 공연은 우리 전통춤을 세계의 관객에 차분하게 보이고 있었는데 작품을 더욱 예술성 있게 보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9월 들어 2일과 3일 이틀 동안에는 한국발레협회에서 주최하는 ‘제6회 청소년 발레페스티벌’이 교육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있었는데 우리 발레 발전의 초석을 이루는 중요한 행사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7일과 10일 사이에는 성남아트센터 등에서 성남국제무용제라는 것이 이루어졌는데 행사의 목적이 뚜렷이 살아나지 않아 행사를 위한 행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9월 9일에 엘지아트센터에서 본 김명숙 늘휘무용단의 < 알 수 없어요 > 공연은 우리 전통 무용의 춤사위를 살리면서도 차분하게 표현을 이루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9월 1일 자유소극장에서 본 김은희 무용단의 < 진공 >에서는 객관적 상징이 되는 움직임이 실종되어 따분한 느낌이었다.
9월 22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본 러시아 헬리코 오페라단의 < 므첸스코의 레이디 멕베스 > 오페라 공연은 무용평론가인 평자의 입장에서는 오페라가 아니고 성공한 무용 공연처럼 보였다. 복잡한 스토리를 명쾌하고 정밀한 안무로 풀어나가면서 소설처럼 무대에 표현해 내고 있던 이 작품은 완벽한 무용 ‘안무’가 장치된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10월에 들어 특이했던 공연은 21일과 22일 이틀 동안 유니버설발레단이 토월극장에서 보인 < 컨템포러리 발레의 밤 V > 공연이었다. 유니버설발레단 단원들의 모던발레 소화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보여주던 이 공연은 객석의 큰 환호를 받고 있었다.
27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본 국립발레단 단원들의 < 카르멘 > 공연도 예술적 표현력과 감성이 살아 넘치고 있었다. 우리나라 발레 무용수들도 좋은 안무 작품 에서는 충분히 그 능력을 보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13일에는 광주시립무용단이 서울 국립극장으로 와서 창작발레 < 서동요 >를 선보였다.
독일 스튜트가르트발레단의 < 말괄량이 길들이기 > 성남아트센터 공연이 15일에 있었는데 2막에서 강수진의 사랑스러운 2인무가 객석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숙재 밀물현대무용단의 한글날 공연이 17일과 18일 이틀 동안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있었는데, 무용수 한명 한명 모두가 한글 사랑의 표현에 진지하게 몰입하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있었던 국립무용단의 정기공연 < Soul 해바라기 >를 28일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보았는데 투명하고 객관적인 안무의 실종으로 한심스러움의 극치를 이루는 공연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10월 18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는 한국무용협회가 주최하는 남자 무용수의 생명 같은 병역 혜택이 걸린 < 제43회 전국신인무용경연대회 >가 있었는데, 이런 경연대회는 더욱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회와 영원히 격리되는 일을 맞게 될 수도 있다.
11월 6일과 7일 이틀 동안에는 서차영발레단이 < 레이몬다 > 전막공연을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이루고 있었다. 프로무용단도 선뜻 이루어 내지 못하는 대작 발레 공연에 도전하고 있던 이 공연은 아직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대단히 어려운 도전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고 있었다,
17일과 18일 이틀 동안에는 이원국발레단이 성남시민회관 대극장에서 < 지젤 >의 화려한 우아함을 객석에 마음껏 선사하면서 깊어가는 가을 밤을 행복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11월 11일 국립국악원 우면당 에서는 박은하의 전통무용공연이 맑고 깔끔하게 이루어졌다.
25일에는 아르코 소극장에서 현대무용단 푸름의 정미경 ,박소연 등이 신선한 움직임과 이미지를 진지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26일 국립국악원 우면당 에서는 원로 무용인 정명숙의 < 정명숙 춤 향기 60년 - 하늘에서 그린 시 >공연이 깨끗한 기품을 이루며 맑게 이루어졌다.
11월 18일 자유소극장에서 있었던 남정호의 < 고백 >공연은 객관적 안무가 부재하여 객석과 아무런 소통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으며, 28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있었던 박명숙의 < 에미 > 재공연도 투명한 메시지 전달이 아쉬웠다. 12월 들어 제일 충격적인 공연은 12월 27일에 정동극장에서 본 < 성냥팔이 소녀의 꿈 > 이라는 공연이다.
작품의 예술적 수준도 문제이지만 어린 무용학생들을 1달 이상을 강제 동원하여 상업적인 공연에 내세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3류 무언극인지 학예회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던 이런 상업공연에 프로예술을 지향하는 어린 무용학생을 동원한다는 것은 사회적. 도덕적, 법률적 문제를 만들 수 있다.
12일 압구정동 창천아트홀에서 본 주리무용단의 < 스페인 춤 >공연은 세미프로 무용수들과 프로무용수들이 모두 힘을 합쳐 자신들의 무용을 진지하게 펼쳐나가고 있었다. 23일 성남시민회관 대극장에서 본 정영두의 < 휘어진 시간 >은 작품의 뚜렷한 메시지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었다.
12월 24일 저녁에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본 툇마루무용단의 < 겨울이야기 >도 3류 연극 연출에 함몰되어 무용예술로서의 상징적이고 투명한 뉘앙스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21일과 24일 낮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본 유니버설발레단의 < 호두까기 인형 >은 성탄을 맞은 어린이와 가족들의 행복하고 포근한 잔치가 되고 있었다.
23일에 본 국립발레단의 < 호두까기 인형 >은 해마다 보지만 아직도 유리 버전의 ‘안무’가 생경한 느낌이 있었으며, 올해 성남아트센터로 옮겨 처음 공연된 벨로루시발레단의 < 호두까기 인형 >도 객석의 어린이들의 큰 탄성 속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무용평론가로서의 평자의 2006년 1년도 < 호두까기 인형 > 공연과 함께 저물었다.(송종건/무용평론가/dancecritic.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