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국제청소년관현악페스티벌-베이징 중앙음악원 관현악단
공연 /
2008-05-27 23:3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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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가 이번 공연에서 성남의 청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것을 미리 적어둔다. 그들은 나의 돌처럼 굳은 머리와 무쇠처럼 차가워진 심장에 신선한 일격을 가했으며, 클래식 공연 관람의 에티켓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주었다.
내 앞과 앞, 그러니까 1층 14열 중간에 일렬로 앉아 있던 청중들이 공연 시작 후 굉장히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공연 중에 일체의 잡담이나 여타 행동을 하지 않고 '닥치고 공연만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던 내 눈에, 그들이 연주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뭔가를 계속 수군거리고 있는 것이 보인 것이다.
이렇다할 인맥도, 혈연 지연 학연 그런 것도 없는 부실한 학생에 불과한 나는 쪼들리는 돈에서 간신히 입장료를 마련해 표를 사왔기 때문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짜증을 마음 속에 쌓아갔다. 이어 연주된 시벨리우스 협주곡은 모든 악장의 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고, 팜플렛 떨구는 소리와 헛기침 소리는 곳곳에서 출몰해 집중력을 계속 흐리고 있었다.
이어진 2부 공연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각 악장마다 쏟아진 박수 소리와 수군거림, 누군가가 켜놓은 핸드폰으로 인한 잡음 등이 계속 주의를 흐트리는 통에 정말 집중해서 제대로 들은 대목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악장이 끝나갈 무렵, 나는 짜증을 가라앉히고 좀 다르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가면서, 나는 그들이 사실 비평가 정신이 투철하며,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대인배' 청중들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들에게 아트센터 측이 공연 전에 방송해 주는 '주의사항' 은 그저 허례허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호불호를 숨김없이 표현해주는 그 용기와 과감함을 나는 단순한 질투심으로 포장해 혼자만 열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나누던 수군거림은 사실 공연에 대한 심도있고 날카로운 비평이었고, 악장마다 쳐주던 박수는 연주에 대한 칭찬 (혹은 항의)였으며, 핸드폰 촬영과 문자메시지 전송은 현장의 감동 (혹은 불만)을 생생히 전하고자 하는 행동파적인 면모였다. 심지어 사탕 봉지를 계속 부스럭거리거나 팜플렛을 떨구던 청중도, 사실은 개인적으로 느끼는 공연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하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생동감있는 관람 현장인가!
나는 그들의 새롭고 진보적이며, 또 신선한 신개념 공연 문화에 깊이 감동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진행요원 한 사람에게 따끔하게 지적하기로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아트센터 측의 구시대적인 '공연장 매너 지도 방송' 을 그만둘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은연 중에 청중들의 높은 수준에 대해 칭송하는 발언을 섞어 넣었다.
연주하는 음악인들이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청소년이던 성인이던, 유명하건 유명하지 않건 간에 '우리는 우리 식의 공연 문화를 갖고 있다' 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신념의 소유자들, 그들이 바로 내가 오늘 성남에서 본 청중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대하고 고결하며, 또 영원불멸이 될 크나큰 가르침을 받았다.
다시 한 번 오늘의 청중들, 특히 14열에서 단체 관람을 하며 내게 가장 큰 깨우침을 준 청중들에게 깊이 감사드리는 바이다. 그리고 성남아트센터 경영진이나 운영진들은 이러한 청중들의 신개념 공연 문화에 하루빨리 적응하여, 모든 허례허식과 권위를 버린 무한한 자유를 청중들이 누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이러한 식견있는 청중들의 재정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초대권 배부 확대도 심각하게 고려할 것을 충고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