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세계발레스타페스티벌
공연 /
2008-10-17 01:56:52
조회 : 12352
Name 무용평론가 송종건
Subject 2008 세계발레스타페스티벌
Homepage http://dancecritic.com.ne.kr
< 2008 세계발레스타페스티벌 >
‘2008세계발레페스티벌’이 지난 6월 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있었다. 국내 무대에서 오랜만에 수준급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으나, 일부 작품에서는 ‘세계적인’ 느낌 같은 것은 찾을 수 없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출연자는 매혹적이지 못한 움직임으로 팽팽한 공연의 긴장감을 깨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날 오랜만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발레 공연이 열리는 것을 보면서, 평자는 다시 한번 이런 도심의 대형 공연장에 상주 발레단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무지에 가까운 ‘몰상식’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세종문화회관에는 서울시교향악단 등 많은 예술단체가 상주하고 있다.
그런데 상주 발레단은 없다. 현대화된 대형공연장에 꼭 있어야 할 예술단체는 없고, 여타 7~8개의 다른 예술단체는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술단체에서도 상주 공연단의 역할을 거의 못하면서, 현재 세종문화회관 대부분의 공연 일정은 외부 수입 상업 뮤지컬 등으로 도배되고 있는 것이다.
주황빛 숏 원피스를 입은 안나 안토니체바가 탄탄한 회전을 이루며 시작되던 볼쇼이발레단 두 주역(남자 : 드미트리 벨로골로프체프)의 ‘에스메랄다’ 중 < 다이아나와 악테온 >은 고결하게 자란 늘 푸른 소나무처럼 기품 있으면서도, 치밀하고 자연스러운 2인무를 이루어냈다.
벨로골로프체프의 공중 도약은 힘차고 싱그러운 느낌이었으며, 안토니체바의 독무도 여성의 춤이었지만 중량감 있게 이루어졌다. 세계 최고라는 말까지는 할 수 없지만, 세계적인 기량과 느낌을 이루던 조각 같은 2인무를 만들어냈다.
고양이 소리 같은 것을 내면서 동물 흉내를 내고 있던 다닐 심킨의 < 무어 훈 >은 몸을 무대에 구르기도 하고 의태적인 동작을 만들기도 했는데, 우리나라 주요 콩쿠르의 창작 무용 수준이었다.
핀란드국립발레단 하은지와 야코 에롤라가 이룬 지리 킬리언 안무의 < 작은 죽음 >은 원작의 의미를 거의 살려내지 못하고 있었다. 좀더 유연한 움직임으로 감성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라 스칼라 무용단 마르타 로마냐와 네덜란드국립발레단 이나기 우레자가가 이룬 ‘백조의 호수’ 3막 중 <흑조 파드되 >는 로마냐의 감성 깊은 움직임과 우레자가의 탄탄하고 정확한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함께 고귀하게 이루던 아라베스크 퐁세는 넒은 세종문화회관의 무대를 감동의 전율로 가득 채우기도 했다. 역시 세계 최고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좋은 커플이었다.
영국 안무가 케네스 맥밀란이 안무한 ‘마농’ 중 < 베드룸 파드되 >를 공연한 파리오페라 발레단의 도로테 질베르와 마뉴엘 르그리는 섬세한 동작과 이미지를 만들면서 스토리텔링 발레의 진수를 보이고 있었다.
중국국립발레단의 장지엔과 셩시동이 이룬 ‘백조의 호수’ 2막 중 < 백조 파드되 >는 순수한 움직임과 포즈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나가면서 동양 최고 수준의 클래식발레를 보여주고 있었으나, 찬란하게 빛이 나는 세계 제일의 발레라고는 할 수 없었다.
조지발란신 안무의 < 차이콥스키 파드되 >를 공연한 키로프발레단의 올레샤 노비코바와 레오니드 사라파노프는 낭만적인 움직임을 깨끗하고 아기자기하게 표현해내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춤의 아름다움을 밖으로 완전히 표출시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깊은 향취나 빛나는 경이 같은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인터미션후 이어진 2부 첫 번째 작품은 하은지, 야코 에롤라 커플의 < 그랑파 클래식 파드되 >이었는데, 야코 에롤라의 점프나 움직임의 스케일이 약하고 시원하지 못했고, 하은지도 자신의 움직임에 감성을 더 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볼쇼이발레단의 < 스파르타쿠스 >에서는 애절한 움직임을 감성 깊게 표현해내던 안토니체바의 움직임은 독무인데도 객석의 관객들을 무대로 강인하게 흡인시키고 있었다. 벨로골로프체프도 안토니체바를 부축하며 함께 장엄한 대서사시를 써내러 갔는데, 우리나라 이원국도 못지않은 감동을 만들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게 했다.
마르타 로마냐와 이나기 우레자가가 이룬 < 탱고 아르헨티노 >는 약간은 퇴폐적인 것 같으면서도 세련된 사랑을 표현하는 창작 모던발레였는데, 특별히 세계적인 창의적 작품은 아니었다.
고난도 테크닉을 가미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던 중국국립발레단 장지엔과 셩시동의 창작 무용 < 원스 어폰 어 타임 >은 두 사람이 베개를 소도구로 사용해 작품을 이루어 나가고 있었는데,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은 아니었다.
다닐 심킨과 한서혜가 이룬 < ‘돈키호테’ 3막 중 파드되 >는 한서혜가 그런대로 깨끗한 느낌을 보이고, 다닐 심킨이 예년에 비해서는 힘이 붙은 모습을 보였지만, 거의 아무런 감동이 없었다.
이어진 파리오페라발레단 도로테 질베르와 마뉴엘 르그리의 < 누아주 >는 이번 공연에서 거의 유일하게 세계 최정상의 작품을 국내 발레애호가들에게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지리 킬리언이 안무한 이 작품에서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두 주역들은 진한 스토리가 담기는 움직임을 예술성 높게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푸른 조명의 배경에 진한 수채화를 그려나가는 듯한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은 무용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은 그 한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고, 바로 이런 무용의 연기가 ‘세계적인’ 것이라는 것을 객석에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마지막 키로프발레단 두 주역 올레샤 노비코바와 레오니드 사라파노프의 < 해적 > 2인무는 정교한 움직임을 이끌어 나가면서 강렬하고 아름다운 마무리까지 만들어냈지만, 세계적인 감동을 이루어내지는 못했다.
오랜만에 국내 발레 팬들에게 수준급 발레를 보이던 이번 공연이었지만,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빛나는 화려함이나 우아함 같은 것은 거의 보이지 못했다. 거의 유일하게 파리오페라 발레단의 모던발레 < 누아주 >에서 그런 감동을 받았을 뿐이다.
볼쇼이발레단, 라스칼라발레단, 키로프발레단 주역 무용수들도 ‘준수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큰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일부 출연자들과, 기존에 예정해 있던 출연자들이 참석하지 못해 ‘대타’로 나왔다는 출연자들의 수준을 높이든지 하여, 공연 전체 수준의 레벨은 어느 정도는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송종건/무용평론가/dancecritic.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