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오페라발레단 - ‘Le Parc(공원)’
기타 /
2009-04-01 00:23:18
조회 : 11948
Name 무용평론가 송종건
Subject 파리오페라발레단 - ‘Le Parc(공원)’
Homepage http://dancecritic.com.ne.kr
< 파리오페라발레단 - ‘Le Parc(공원)’ >
흔히 같은 공연을 하루 혹은 이틀 사이에 다시 보면, 그 참신함은 현저히 떨어진다. 특히 클래식의 반열에 완전히 오르지 않은, 창작공연의 경우에는 더 그런 경우가 많다. 따라서 지난 3월 6일 파리오페라하우스 가르니에극장에서 본 파리오페라발레단의 < Le Parc(공원) > 공연도, 이틀 만에 두 번째 보는 창작발레 공연이라 어떨까 했다(하지만 공연을 처음 보고 나서 벌써 이 공연은 또 다시 보아야 된다는 강렬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공연을 다시 두 번째 보면서, 또 다른 시각에서 이 작품을 바라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이 작품이야말로 진정 이 시대를 선도해 나가는 세계적인 창작발레라는 것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막이 오르고 검정 의상의 4명의 남자가 밤의 전령처럼 움직이고 있다.
물결이 흔들리는 듯한 움직임을 특이하면서도 절도 있게 이루는데, 충분한 의미를 만들고 있다. 4명의 밤의 전령들이 사라지고 무대를 가득 채운 군무들이 의자를 소도구로 한 깔끔한 움직임들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나간다.
무용수들이 적당히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들의 역할이 치밀하게 준비되어있다. 남녀 군무들이 전통 클래식발레의 틀을 깨는 움직임인데도, 대단히 프래쉬한 느낌을 던지고 있다. 군무가 결코 대칭을 이루지 않는데도 대단한 균형이 느껴진다.
즐거운 듯이 우아하게 이루는 선이 뚜렷하고 동작이 큰 움직임인데도, 클래식 음악에 촉촉이 젖어들고 있다. 빗살무늬 조명을 받으며 인터미션 없이 바로 이어지는 2막은 창의적 무대장치와 의상들이, 세계 제일의 예술작품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어떠면 저렇게 의상 하나하나의 예술성이 작품의 의미에 기품 있게 고스란히 스며들고 있는지? 하기야 프랑스 파리는 세계 최고의 예술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들은 발레작품의 내용을 꿰뚫어 보는 사람들이 무대와 의상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완벽한 예술협력(Artistic Collaboration)을 통해, 종합예술로서의 시너지효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클래식한 테크닉을 배제한 움직임을 자유롭게 이루어 나가는데, 결코 완벽한 클래식주의자들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끈적한 클래식의 내음이 물씬거리고 있다.
8쌍의 남녀 군무들이 8개의 큰 기둥에서 세상에서 제일 낭만적인 움직임을 이룬다. 팔의 위치를 특이하게 한 여자들의 포옹을 받으며 각 쌍이 키스한다. 절정의 순간에 8명의 여자들이 모두 사라지자, 남자들 중 한명이 몸을 추스르지 못할 정도의 허탈감에 빠져있다. 그러자 갑자기 남자 한명이 그 남자에게 키스를 해준다.
완벽히 상징되어 상큼하게 안무된 움직임의 2인무가 이루어지고, 그 속에는 여자가 남자를 3번이나 머리로 가슴을 쥐어박는 파격적인 움직임도 있는데, 이것도 충분히 작품 표현력의 일부로 잔잔히 스며들고 있다. 다시 3막에는 남자 4명이 여성을 몽유병자처럼 들고 움직인다. 이어진 파드되는 몽환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가장 섬세하게 절제된 에로티시즘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파리오페라하우스 가르니에극장의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하여 과람하고 있던 이날 공연은, 가장 현대적 낭만과 우아함을 보이면서도 관객들을 계속 예술적 긴장감 속에 빠져들어 가게 만들고 있었다.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는 상태로 이틀 만에 다시 본 이 공연은, 사실은 두 번째 본 이날 공연에서 더 큰 긴장감을 느낀 것 같았다. 관객들의 수준도 높았지만, 작품이 그만큼 객석을 무대에 빨아들이고 있었다.
솔직히 이 작품은 ‘마농’류의 창작발레와는 그 차원이 다른 발레였다. 이 작품은 우리시대의 발레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던 발레였다. 그리고 그동안 쁘띠빠, 이바노프 시대 이후, 전 세계의 클래식발레 대작의 창조는 사실상 끝이 났다고 생각해오던 평자를 깊이 반성하게 만들고 있던 작품이었다.
이날 이틀 만에 두 번째로 이 공연을 보면서, 평자는 이 작품이 이 시대를 선도해 나가는 세계적인 작품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결코 쁘띠빠, 이바노프의 작품과는 다르다. 그리고 조지 발란신이나 지리 킬리언의 작품과도 다르다.
실험적인 면에서 본다면, 도리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니진스키의 작품과 가까운듯하기도 하는데, 결코 그것도 아니다. 결국 자신의(안무가 프렐조까주) 그리고 파리오페라발레단 고유의 현대적 색깔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공연이 끝난 후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다가 중간에 멋쩍어 하면서 기쁜 웃음을 머금고 사라져 버리는 아직은 젊게 보이는 순수한 안무가의 모습에서 어떤 무한한 예술적 힘을 느꼈고, 우리나라에도 빨리 정말 실력 있는 예술가가 국가예술기관을 맡아, 정말 좋은 예술작품도 만들고, 국민들의 사랑도 받아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송종건/무용평론가/dancecritic.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