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바스티유극장에서 '존 노이마이어의 공연 전 관객과의 대화' 참관기
기타 /
2009-04-01 00:25:03
조회 : 12037
Name 무용평론가 송종건
Subject 파리 바스티유극장에서 '존 노이마이어의 공연 전 관객과의 대화' 참관기
Homepage http://dancecritic.com.ne.kr
< 파리 바스티유극장에서 '존 노이마이어의 공연 전 관객과의 대화' 참관기 >
파리는 3월초인데도, 흐린 날씨에는 추운 느낌이 있었다. 파리 방문 3일째인 이날(2009년 3월 5일) 평자는, 3월 13일부터 파리오페라발레단과 말러교향곡을 음악으로 한 발레를 창조하여 공연할 예정인, 세계적인 발레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의 공연 전 관객과의 대화 세미나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물론 당연히 모든 행사가 불어로 진행될 것이 뻔하지만(따라서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세계 발레 선진국의 발레단에서 새로운 창작공연을 올리기 전에는 도대체 관객, 혹은 발레애호가들과 어떤 대화의 기회를 갖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행사가 있는 바스티유오페라하우스에 도착하니 파리의 많은 발레애호가들이 모여 있다. 자연스럽게 턴 아웃이 되는 분들도 보이는 것을 보면, 발레와 직접 관계되는 분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는 동양의 50대 중반의 남자는 나뿐인 것 같다. 동양의 여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일부 나이가 많게 보이는 할머니 같은 분들은 나를 신기하듯이 바라보기도 하는 것 같지만, 나는 이런 종류의 모임의 분위기를 꼭 확인해 보고 가야한다. 발레를 정말 사랑하는 것 같은 많은 분들이 모인 가운데, 조그맣고 아담한 스튜디오의 문이 열리고, 이제는 모두 함께 앉아 존 노이마이어를 조용히 기다린다.
그런데 혹시 오늘 나에게도 기회가 오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로 무엇보다도 도대체 안무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현시대 세계 최고의 거장이라는 존 노이마이어의 안무법에 대해 정확히 대답을 받으면, 지금 뇌사상태에 빠져 식물인간처럼 되어있는 우리나라 발레 창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런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서는 안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이는 나에게 누가 “ 평론은 어떻게 쓰는 것인가?”라고 물어보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며, 또 유명한 소설가에게 “소설 쓰는 법을 대답해 달라”고 질문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책으로 몇 권을 써도 다 이야기할 수 없는 질문을, 결코 이런 곳에서 던져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무용 발전을 위해 아무리 꼭 알고 싶어도, 그런 질문은 하지 말기로 하자. 만약 정말 그런 질문을 하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대답을 받아내려면, 개인 인터뷰 정도의 경우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꼭 하고 싶은 질문이 있다. 존 노이마이어의 안무에서 무용과 음악과의 관계이다. 이 정도는 무난하지 않을까? 특히 오늘 세미나를 갖는 존 노이마이어의 작품도 말러 교향곡하고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도, 내가 질문의 기회를 얻어야 가능한 것이고, 그것도 영어로 대화가 가능해야 되는 경우이다. 물론 존 노이마이어는 원래 미국 사람이라서 전혀 문제가 없겠지만, 여기가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나는 프랑스어로 이루어지는 세미나라는 것이다.
그래, 이것저것 되지 않으면 가만히 앉아 있다가 그냥 돌아가도록 하자. 세계 대표 발레단의 공연 전 관객들과의 세미나의 분위기만 보고 가도록 하자. 낮 12시 정시에 너무나도 멋지게 보이는 존 노이마이어가 들어선다. 연습 지도 도중에 나왔는지, 비록 검정 추리닝과 연습복 차림의 모습이었지만, 세계적인 거장의 모습이 편안하게 보인다.
역시 불어로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회자와의 대화로 이루어지는데, ‘존 크랑코’등의 인명이 나타나는 정말 진지한 대화의 모습이다. 그런데 느낌이 발레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2번째 질문에 대해, 존 노이마이어가 이미 대답하고 있는 것 같이 되는데, 내가 다시 질문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 세미나의 진지한 분위기를 확인하면서, 뭔가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해 분노 같은 것이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공연을 하면 그냥 ‘기자회견’만 한다. 심지어는 발레를 깊이 모르는 일부 기자들에게 싸구려 홍보를 하여, 우리 발레 예술의 품위를 무너뜨리고, 무용발전의 발목을 잡는 일까지 만들고 있다.
우리는 공연 전에 이렇게 완벽히 오픈하여 관객들과 대화를 가지는 경우가 있는가?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할 일도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세계 초연을 갖는 창작발레를 만드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기껏 하는 일이 외국의 작품을 국민들의 피 같은 혈세로 수입하여 재탕하는 경우만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유쾌하지 못한 상념에 젖어있는 동안, 존 노이마이어는 정말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오픈된 관객들에게 자신의 발레창작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약 15분 정도 지난 다음 노이마이어가 웃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자, 큰 박수가 터져 나온다.
곧 이어 질문을 받고, 나는 두 번째로 질문을 할 수가 있었다. 나의 질문의 요지는, “뉴욕 시티발레단의 상임안무가였던 조지 발란신이 그의 무용은 음악이라는 바닥 위를 걷는 것이라고 했지만, 20세기 중후반 포스트모던무용 안무가들은 그들의 무용 바닥에서 음악을 걷어내는 안무 작업을 한다고 했다. 즉, 자신들 이전의 안무가들이 너무 음악에 종속 되어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무용은 음악에 연관되는 것을 탈피하여, 오직 무용수의 움직임(movement)과 이미지(image)로 모든 승부를 건다고 했다. 당신의 무용과 음악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존 노이마이어는 나의 이 질문에 대해 또 다시 대단히 진지해지고 있었다. 우선 내가 영어로 한 이 질문을, 스튜디오를 가득 메운 프랑스 관객들에게 불어로 설명한다. 다행스럽게도, 어떻게 보면 당연히, 존 노이마이어도 나의 질문이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선 존 노이마이어 자신은 자신의 안무에서 움직임의 존중을 절대 놓치지 않는 안무를 한다고 영어로 이야기했다. 그 다음 불어로 다시 이야기하는데, 자신은 자신의 작품을 모두 안무한 다음 음악 작곡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한 것 같고, 그 이후 약 5분 이상 진지하게 불어로 이야기한 것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마도 무용과 음악의 균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물론 여기서 내가 다시 영어로 이야기해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아마도 안무가 지망생인 듯 한 젊은 프랑스 남자 등 3~4명의 질문자의 질문이 있었고, 그 분위기도 질문과 대답 모두 매사 정확하게 하고 싶어 하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 이어졌다는 것이다.
정말 격조 높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세미나가 끝나고 잠시 만난 존 노이마이어에게, 마침 내가 가져갔던 나의 8번째 평론집 ‘무용의 미학적 분석과 비평’을 전달했다. 비록 한글로 된 책이지만, 화보에는 우리나라 유니버설발레단의 클래식발레 공연 등과 한국전통무용 공연 등의 사진들도 많으니까, 그가 나의 책을 보고 우리나라 발레와 무용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이제는 일본까지만 와서 그냥 돌아가지 말고, 한국에도 방문해 주었으면 한다.
정말 좋은 인상을 가진 존 노이마이어와 기념촬영을 하 다음, 파리오페라하우스 바스티유극장의 조그만 스튜디오를 빠져나오니, 3월초 파리의 하늘은 그동안 푸르게 맑아 있었고, 신선한 공기가 나를 상쾌하게 감싸고 있었다.(송종건/무용평론가/dancecritic.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