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다
공연 /
2011-02-12 09:53:16
조회 : 13656
성남아트센터가 생긴 것을 누구보다 기뻐했던 야탑동 아줌마입니다.
지난 달 아끼는 후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선배, <아이다> 보셨어요?"
"아직...다음 달 11일에 VIP석 티켓 석 장 예매해 뒀는데...왜?"
"서울 아줌마 세 명이랑 딸 셋이 1월 30일에 보러 가기로 했거든요. 인터넷 평이 좋지 않아서..."
"지난 성탄 공연을 본 젊은 연인들 평은 꽤 괜찮던데...주차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식사할 곳도 없고, 공연 중에 사람들을 막 들여보내고...공연장 수준이 엉망이라고..."
"공연 중에 사람을 들여보낸다고? 그럴리가...눈이 많이 와서 대부분의 관객이 늦었겠지..."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괜찮은 음식점 몇 군데 추천해 주세요!"
1월 31일...
추천했던 음식점이 맘에 들었는지 후배는 모든 게 만족스럽다는 감사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바로 어제, 금요일.
몸이 천근만근 파김치가 됐는데 할 일을 반도 못한 채 퇴근을 서둘렀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스무 살 딸과 접선하고 식당에서 남편과 만나 저녁을 먹었습니다.
우리딸과 띠동갑인 영화감독의 죽음을 생각하며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먹었습니다.
티켓 찾아 한 장씩 주머니에 넣고
시디랑 프로그램 28,000원 (카드결제가 안 된다고 해서ㅠㅜ)현금으로 사서 들고
인증샷 몇 방 찍고
길(?) 건너 편의점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커피를 마시다가 남은 것 이름 스티커 붙여 입구에 두고
(잠실에 있는 뮤지컬 전용 극장처럼 뚜껑이 있는 음료는 (사)가지고 들어가게 했으면...^^)
1층 7열 정 가운데 자리에 세 식구가 나란히 앉았습니다.
왼쪽 좌석이 텅텅...헐~, 불안하다!
공연을 시작합니다.
박수 갈채가 터집니다.
박칼린씨가 인사를 하나 봅니다.
(앞 자리에 앉은 분이 몸을 최대한 앞으로 당기고 계셔서 제 눈엔 안 보입니다.)
여기저기 친절한 아줌마 해설자들이 계셔서 짐작이 가능합니다.
무대 장치와 음향과 배우들의 목소리에 젖어들 무렵...
옆자리에 키 큰 남녀 한 쌍이 당당하게 서서 들어옵니다.
전 경악하고 있습니다.
전혀 조심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는 두 사람...
둘이 얘기도 합니다.
의자에 털썩 앉는 소리도 들립니다.
제 심장이 벌렁거리며 아찔해집니다.
일어나서 외투도 벗고, 자유롭게 편안한 자세로 관람을 시작하는 두 사람...
그. 러. 더. 니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납니다.
비어있는 왼쪽 자리로 옮기느라 여자친구를 넘어갑니다.
롱부츠를 벗어 놓고 휴지를 떨어뜨리고...
이 아줌마, 이미 공연에 집중하기는 틀렸습니다. 슬퍼집니다.
드디어 쉬는 시간...나를 경악하게 했던, 하고 있는, 할 커플이 나가고...
안정을 되찾으려고 프로그램을 펼칩니다.
헐~...우째 이런 일이?
8열로 안내원이 다가와서 물을 마신다고 뭐라고 합니다.
물을 꼭 마셔야한다며 집에서 가져왔으니 오늘만 봐 달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안내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관람객들을 감시합니다.
남편이 나갑니다.
한 안내원을 붙들고 다그치는 것 같습니다.
쉬는 시간에 집에서 가져온 물을 마시는 것과
관람 중에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것 중 뭐가 더 문제냐? 물었답니다.
대답은,
바닥이 나무라서 물을 흘리면 안 된다는 것과
중간에 관람객을 들여보내는 것은 "기획사 방침"이라는 것!
최고의 공연/최악의 공연장...슬픈 공감...
국내협력감독님과 협력연출진...그리고
좋은 공연을 위해 애쓰시는 배우들에게 말할 수 없이 부끄럽습니다.
유료회원 10% 할인액 12.000원...만 내고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 다시 보라고 해도
"아이다, 이 공연은 정말 아이다!"로 답할 겁니다.
이번 공연 기획사...
하나를 얻으려다가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