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간은 성남시 최초의 공공예술을 목적으로 한 레지던시(residency)형 창작공간으로서 타 지역과는 차별된 목적을 가지고 운영한다. 2013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발표 「창작스튜디오 현황 조사 및 지원 방안 연구(김연진)」에 따르면 국내 창작스튜디오는 1990년대 후반 처음 등장한 이후 2013년 말 기준으로 모두 124개의 레지던시 혹은 창작센터, 창작공간, 예술인 창작촌, 창작스튜디오 등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기관들은 대부분 일정 규모 이상의 되는 폐산업시설 등을 활용한 건출물이지만 성남시는 이러한 큰 규모의 폐산업시설을 찾기 어렵다. 특히 원도심 내 건축물은 대부분 20평 규모의 주택들로 이루어져 있어 타 기관과 비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신흥공공예술창작소는 지하 1층, 지상 3층 건축물로 1층 전시실을 제외하고 2 ~ 3층 스튜디오만 보면 1인 평균 약 13m² 밖에 안 되는 소규모의 작업실을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공간의 특징은 성남시 태생에 기인한다.
성남시(당시 광주대단지)는 1973년 성남시로 승격되기 전까지 경기도 광주군(지금의 광주시)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서울시의 빈민가 정비 및 철거민 이주사업의 일환으로 계획된 위성도시로서 철거민들은 야산 일대에 가구당 약 20평씩을 분양받았다. 이러한 모습이 지금의 20평 규모의 건축물들이 많은 이유이다.
이렇듯 성남문화재단은 타 기관에 비해 협소한 작업환경 등을 고려하여 공공예술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반영하였다. 입주자 작업을 창작스튜디오라는 공간에만 한정짓지 않고 지역의 사회적 담론과 역사와 환경, 사람과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예술적 행위에 대한 외연적 확장을 이루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는 친숙하게 다가오는 삶의 이야기로 예술이라는 높은 담장을 조금이나마 허물고 지역 사회의 이야기를 예술로서 공유하고자 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성남문화재단이 주민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첫 번째 전시는 올해 6월 공모로 선정된 공공예술 프로젝트 수행이 가능한 시각예술작가 5명과 독립기획자 1명이다.
먼저, 박혜수(Hyesoo Park) 작가는 시간, 꿈, 애정의 상실, 보통의 기준과 같은 보편적인 주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작품으로 표현해온 개념미술 작가로서 지난 8년간 '사라지는 것'들에 주목하여 현재를 반추할 수 있는 'What's Missing'과 프로젝트 'Dialogue'에서 '당신이 버린 꿈(2011), 'Goodbye to Love'(2013) 그리고 '보통의 정의'(2013)등 4 ~ 5가지의 설문조사를 실시, 평범한 이들의 후회가 섞인 실패담을 수집했다. 작가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러나 노력한 대가를 성취한다 해도 만족감은 짧아 금세 다음을 걱정한다. 그러나 무언가를 얻었을 때가 아닌, 무언가를 잃었을 때 사람은 더 분명하게 변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성공한 삶의 가치는 결국 얻는 것과 잃은 것을 비교하면 분명해지는 법이다. 개인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음에도 '과연 우리는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 걸까'
공공예술프젝트팀 박승예(Seungyea Park), 임지은(Jieun Im) 작가는 직역의 삶의 시간, 시간의 얼굴을 드로잉과 텍스트 작업으로 공공예술프로젝트를 수행하고자 하는 프로젝트팀이다. 먼저, 박승예 작가는 펜을 통해 무수한 곡선의 반복으로 무의식의 흔적을 캔버스나 종이 위에 구상화된 결과로 나타내는 작가이다. 무수한 반복으로 구상화된 괴물은 개인으로서의 그것과 시스템 안에서의 그것으로, 개인과 집단의 불안이 벌이는 잔혹과 폭력, 다름에 대한 부정, 오만,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묵인의 과정에서 누가, 어떻게, 왜 괴물이 되어 가는가를 펜과 아크릴물감을 사용한 드로잉작업으로 이야기한다. 임지은 작가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자신의 내면에 투영하여 자신만의 언로로 표현하는 작가로서 성남시 원도심의 다양한 이야기와 삶의 시간들을 리서치하고 텍스트화 한다.
박지헤(Jihye Park) 작가는 가장 가까운 관계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원초적인 갈등 그리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오는 불안이라는 다층적인 심리상태를 영상작업을 통해 보여 주고자 한다. 라캉은 "불안의 본질적인 대상은 궁극적으로 상징화가 불가능한 실재"(홍중기 『라캉의 재탄생』창작과 비평사 194쪽)라고도 했다. 작가는 작업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이러한 불안의 본질적인 모습을 영상작업으로 담아내고자 했으며, 이를 작업 안에서 '부재하는 순간'으로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의 '부재하는 순간'은 감각적인 순간이며, 지극히 타자와 분리된 작가 본인만의 시간이다. 관계라는 것은 언제나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주체가 되는 대상을 중심으로 가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불완전하고 불확실하고 모호하다. 명확함과 불분명함 속에서 규정짓기 힘든 욕망의 이면에서 발현된 갈등에서 '부재하는 순간'을 이중, 삼중으로 중첩된 비선형적 영상의 형태와 사운드트랙으로서 제시하며 이를 통해 관객들 스스로 '부재하는 순간'의 흔적들을 추정하며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또한 다양한 모습의 욕망을 직접적 제시가 아닌 불확실한 상태 속 존재하는 '부재하는 순간'을 관객들이 추정하여 합의 가능한 범위를 확정하고자 한다.
이생강(Saenggang Lee)은 예술과 삶의 접점을 찾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독립기획자이다. 그녀는 성남에서 나고 자랐다. 그 중의 반을 신도시인 성남시 분당구에서 보냈다. 원도심이 신도시가 되는 과정들을 지켜봐왔고, 도시가 변함과 동시에 인식체계가 변하는 것을 몸으로 느껴왔다. 이생강 기획자는 "도시가 변한다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물리적 삶의 방법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신도시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게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를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과 고찰해보고, 그 의미가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해왔다. 밀어내고 정돈하는 도시를 바라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는 것 이면의 우리가 보존해야할 그 어떤 것에 주목해 왔다. 한 때는 인사동의 금좌탕 옥상에서 지키고 싶은 의미가 있었으며, 한 때는 공장의 20년이 넘은 공간의 의미를 되찾고자 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두 번의 성남시 신도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고, 이번 신흥공공예술창작소에서 신도시 3부작 시리즈 중 마지막 버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번 「신흥공공예술창작소 1기 입주자 입주보고」展 그 첫 번째 개인전 작가인 박양빈(Yangbin Park) 작가는 자신의 유목적인 삶 속에서 끊임없이 대면해온 이주와 경계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사적 내러티브와 사회적 관계와의 고찰을 통해 풀어내는 작가로서,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을 통해 특정 시대와 사회를 조명하고 역사 속에 존재하는 개인의 서사를 통해서 현 시대를 성찰해 보고자 하였다. 작가는 유년시절(1988년)때 경험하였던 한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경제적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88서울올림픽'의 경험을 토대로 그 당시 희망과 새로운 시대에 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던 사회상과 그 후 약 25년이 지난 현실에, 그때 그 시절에 사람들이 열망했었던 사회와는 사뭇 다른 한국사회의 모습을 '유년의 나'와 '현재와 나'라는 두 개의 시점으로 담아낼 예정이다.
성남문화재단 신흥공공예술창작소는 앞으로 1기 입주자 6명과 함께 지역의 역사와 환경, 사람과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소재로 주민과 함께 실험적 공공예술을 모색해 나아갈 예정이다. 「신흥공공예술창작소 1기 입주자 입주보고」展은 그 첫 번째 발걸음으로 입주자와 주민이 함께 소통하고 마주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방주영 ㅣ 성남문화재단 공공예술창작소 매니저
전시작품
박양빈 Documentary, Diary, and Dream, crafted pole(cement, wooden stick), laundry string, joomchi blanket and print(lithography), vintage blankets family set(tailored), clock and calender, framed picture, 4 cushion, 250 square feet, 2013
박양빈, Documentary, Diary, and Dream, digital print on newsprint, 16x24 inches each, 2013
박양빈, The Fine Spring Day, film, 16:34, 2013
작가노트
「다큐멘터리, 다이어리, 그리고 꿈」
2012년 겨울에서 13년 봄으로 넘어가던 무렵 나는 그해 봄에 있을 졸업 전시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국생활 6년차로 접어들던 그 무렵 나는 작가로서, 특히 아시아 작가, 그 중에서도 한국의 작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서양의 작가 혹은 다른 세대의 작가가 아닌 오직 나만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작업에 대한 생각 말이다. 그 담을 구하기 위해서 나는 자신과 내가 살아온 지난날들을 천천히 스캔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내면-스캐닝을 하던 중 타임라인은 계속 뒤로 넘어가 결국 1988이라는 숫자에 멈추었고 나는 곧바로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 해 하교 앞 담벼락에는 온통 선거 후보자들의 전단지로 도배가 되어 있었고 문방구에 가면 귀여운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상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때는 그 호랑이 캐릭터 혹은 전단지 속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무게감 따위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사람들이 들떠 있고 시끌벅적했음을 기억하고 있다.
여느 수많은 80년대의 가정들처럼 우리 집도 단칸방에서 4인 가족이 함께 생활 했었고 올림픽이 열린 그 무렵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리하였듯 우리 가족도 방이 3개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우리는 일상과 사건을 구분하고 하지만 사실 이 둘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먼 곳과 가까운 곳, 우리 집과 세계 역시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가족들과 밥상에서 TV를 보다가 뜬금없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역사적인 순간을 경험하기도 하고 병원에 검진 받으러 간 날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듣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시민이며 민간인인 동시에 역사를 목격하는 시대의 증인이기도 하다.
이 작업을 준비하면서 올림픽의 시대적인 배경에 대해서 조사를 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깊은 나 자신과의 연결고리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고 이 주제와 나의 세대적 연결성은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어렸을 때 문방구에서 보던 그 귀여운 호랑이의 이름은 '호돌이'로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었던 1981년 바덴바덴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당시 1981년생 어린이가 새 시대 혹은 새 희망의 상징인 호돌이로 선정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호돌이'는 나 자신이기도 했고 1988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81년생 내 모든 동갑내기 어린이들이도 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우리들'의 모습에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투영하였던 그 시대 어른들의 모습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올림픽을 통해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고도의 성장을 경험하게 되었고 수많은 아파트와 연립들이 지어지면서 달라진 주거환경과 삶의 질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나에게는 모든 것이 낙관적이고 희망적이었던 '88서울올림픽'으로 상징되는 한 편의 기억이 함께 25년이 지난 현재 그때 우리 혹은 어른들이 기대했었던 세상과는 사뭇 다른 현재의 장면이 공존하고 있다.
우리가 지나간 일을 되짚어 봄은 이를 통해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경제적 격변기를 재방문함으로서 그것이 우리에게 남긴 역사적인 유산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위함일 것이다. 이 작업을 만들면서 나는 25년이란 시차로 인하여 마치 이미 엔딩을 알고 있는 영화를 다시 보는 느낌을 받았다. 8살의 나는 이제 막 영화를 보기 시작하였고 33살의 나는 영화가 끝난 후 다시보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다시 본다는 것, 우리가 무언가를 격하게 추억하고 회상한다는 것은 현재가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 작업은 나의 성장기이기도 하고 한 개인의 가족사이기도 하다. 역동적이었던 사회 변혁기에 대한 기억이자 그 기억과는 사뭇 다른 결망에 대한 진술서이기도 하다. 가장 사적이고 가장 가까운 이야기인 동시에 모두가 다 아는 그리고 아주 멀리 떨어진 세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박양빈 ㅣ 신흥공공예술창작소 1기 입주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