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주-1, 45.5x45.5cm, 캔버스에 아크릴릭, 먹, 2023
작가노트
- 내가 만들어내는 것
내가 경험하는 것들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이 애정하지 않는 것이나 나만 볼 수 있었던 것들이다. 나의 고향, 집 너머, 길을 넘고, 개천을 건너니 나오는 밭을 가로질러야 갈 수 있는 산, 지금은 물류창고가 들어온, 그 전의 기억, 집에 있던 나무들은 내가 혹은 나만 기억하는 것들이다. 시골을 나와 지금의 나이까지 가장 오래 있던 곳은 대학교이다. 어느새 라는 것은 비단 자연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화과라는 어떤 비인기, 비주류, 비경제적인 과의 숙명은 근 9년의 시간동안 많은 것이 사라졌고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덜 변한 것은 학교라는 건물 뿐이다. 너무 당연하게 서 있는 지어진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그것, 굴러다니는 돌멩이 만큼이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정말 늘, 그냥 원래부터 있어야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군다. 나는 내가 나의 집을 그 주변을 기억하는 것처럼 이 곳 또한 기억하고자 한다. 그리고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앎에도 나는 어쩔 수 없다는 것’또한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나와 인연이 된 곳들에 대한 기억과 비애에 대한 것들이다
인주-2, 45.5x65.1cm, 캔버스에 아크릴릭 먹, 2023
작품노트
- 탐구에 대해서
‘어떤 것이 우리들의 눈에 선택되어 작업이 되고 작품이 될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사회적 메시지, 거대한 서사, 동시대적 흐름, 시대정신 등의 거대 담론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서도 분명 미학이 존재할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어둡고 무겁고 강한 것이 아니어도 가볍고 흥미롭고 유쾌함을 가지고도 작업을 나올 수 있다고 또한 믿는다. 이 작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선택된 소재가 바로 인주이다. 굉장히 흔하며 당연하듯 존재하는 것, 그러나 도장을 찍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없어져도 다시 사면 된다는 취급이다. 인주는 갖고 있는 부피에 비해 생각 이상으로 오래 쓸 수 있다. 플라스틱의 물성이 만들어내는 무난한 광택과 검은 형상, 그리고 적당한 크기는 눈에도 잘 띄어 잃어버릴 수가 없다. 거기에 주로 서랍 안에 있다가 필요할 때만 잠깐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누가 몰래 꺼내어 버리지 않는 한 더더욱 없어질래야 없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특징은 시간을 머금기에 더욱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한정적인 용도로 인해 인주는 케이스 안에서 크게 변하지는 않아도 꾸준하게 도장에 찍힌다. 그 꾸준함 만큼 물리적으로 밀려나고, 소모되는 현상은 평탄했던 인주의 표면을 변화시키고 이는 시간성을 묘하게 담고 있게 된다. 앞선 몇 가지 조건들이 모여 만들어낸 이 결과 또한 하나의 미적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인주-3, 33.4x53cm, 캔버스에 아크릴릭, 먹, 2024